건축과 인문학, 벽돌 사이의 사유(思惟)

서론 –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

여러분은 길을 걷다가 오래된 한옥을 보면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?
고즈넉한 기와지붕 아래 흙담이 주는 따뜻함, 나무 창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, 그 속에서 살아갔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?

저는 건축엔지니어입니다. 평소엔 수치와 도면, 구조해석과 법규 사이에서 살아갑니다.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.
“우리는 구조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을 짓는 것이구나.”
그리고 그 깨달음은 저를 ‘건축과 인문학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끌었습니다.

오늘 이 글에서는 건축이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인간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자, 철학의 산물임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.


건축과 인문학, 왜 연결해야 할까?

인간의 삶을 담는 공간

건축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듭니다. 하지만 그 ‘인간’은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닙니다.
감정을 느끼고, 문화를 만들고, 기억을 축적하는 존재죠.
그렇기에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좋은 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.

인문학은 바로 그 ‘인간’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.
철학, 역사, 문학, 예술 등 인문학은 인간의 내면과 관계, 공동체를 이해하는 렌즈를 제공해줍니다.

기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건축

건축은 기둥, 보, 슬래브, 마감재, 법규, 하중 등 복잡한 기술과 제약의 총합입니다.
하지만 어떤 건물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, 어떤 공간은 기억에 오래 남죠.

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?
바로 그 공간이 사람의 감정과 시간, 의미를 어떻게 담아내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.
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건축과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.

📌 건축가 루이스 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.

“벽돌에게 물어보라. 벽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.”
기술자는 벽돌을 쌓지만, 철학자는 벽돌에게 말을 겁니다.
이 둘이 함께해야 비로소 ‘사람을 위한 공간’이 탄생합니다.


인문학이 건축에 미치는 영향

1. 철학 – 건축의 존재 이유를 묻다

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‘좋은 삶’을 고민했습니다.
건축 역시 ‘좋은 공간’, 즉 사람에게 유익한 공간이 무엇인가를 고민합니다.

예를 들어, 감옥과 학교는 구조는 비슷하지만 의미는 다릅니다.
벽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와 관계성이죠.

2. 역사 – 공간에 시간을 새기다

한옥은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닙니다.
그 안에는 조선 시대의 철학, 자연과의 관계, 유교적 질서가 깃들어 있습니다.

고딕 양식의 성당을 보면 그 시대의 종교관, 권력 구조, 미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죠.

건축은 역사의 물리적 증거물이며, 건물 하나가 시대의 집약체입니다.

3. 문학과 예술 – 공간에 감성을 더하다

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.
건축이 문학적 상상력을 담으면 단순한 건물이 **‘서사적 공간’**으로 변모합니다.

예: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배경인 도시들은 실제 공간 속에서 그 여운을 남깁니다.
건축은 문학처럼 사람의 기억 속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합니다.


사례 1 – 바르셀로나의 가우디

안토니 가우디는 건축가였지만 동시에 철학자였습니다.
그의 대표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이 아니라 자연, 종교, 수학, 예술, 인간 이해의 총합입니다.

  • 그는 곡선을 선호했는데, 이는 “자연에는 직선이 없다”는 철학 때문입니다.
  • 빛을 활용하는 방식도 단순한 채광이 아닌, 신성함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.

👉 가우디의 건축은 ‘보는 건축’이 아니라 ‘느끼는 건축’이었습니다.
그리고 이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관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.


사례 2 – 한국의 인문학적 건축

종묘

종묘는 단순한 사당이 아닙니다.
공간의 배치, 동선, 기둥 간격까지 유교적 세계관과 위계 질서를 반영합니다.

  • 대문은 왕만 드나들 수 있었고,
  • 제례 시 움직이는 순서조차 조선 사회의 이상적 질서를 표현합니다.

👉 이러한 건축은 그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.


건축의 미래는 ‘사람’이다

우리는 지금 초고층 빌딩, 스마트홈, 모듈러 건축 등 기술 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.
그러나 역설적이게도,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 중심의 인문학적 사고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.

1. 도시 속 외로움

아파트는 편리하지만, 이웃을 잃게 했습니다.
건축이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면, 그 속에 **‘관계’와 ‘공감’**도 담아야 하지 않을까요?

2. 재난 속의 건축

지진, 팬데믹, 기후 위기 속에서 건축은 생존과도 직결됩니다.
그러나 구조적 안정성만큼 **‘회복탄력성’, ‘돌봄의 공간’, ‘심리적 안정감’**도 중요해졌습니다.

👉 이는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,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한 영역입니다.


결론 – 건축은 결국,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

건축은 벽을 세우는 일이지만, 인문학은 그 벽 너머를 바라보게 해줍니다.
둘이 만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기 좋은 공간, 기억에 남는 공간,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.

건축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고,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기에
두 영역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입니다.


요약 정리

항목내용 요약
주제건축과 인문학의 연결
핵심 이유인간 중심의 공간 설계를 위해
주요 사례가우디, 종묘, 한옥 등
미래 가치기술 시대일수록 인문학적 감수성 중요
결론사람을 이해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다

Q&A – 자주 묻는 질문

Q1. 건축 전공자가 인문학을 공부하면 도움이 될까요?
→ 매우 큽니다. 공간의 의미, 사용자 경험, 설계 철학 등에 깊이를 더해줍니다.

Q2. 인문학이 건축 실무에 도움이 되나요?
→ 네. 클라이언트의 감정과 니즈를 이해하고, 설계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데 유용합니다.

Q3. 어떻게 인문학적 감성을 기를 수 있을까요?
→ 독서, 여행, 전시회 관람, 옛 건축 답사 등 생활 속에서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.


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건물이 지어지고 있지만,
정말 기억에 남는 공간은 몇 안 됩니다.

그 차이는 수치가 아니라 **‘사람을 향한 사유’**에서 나옵니다.